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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茶飯事/내가 읽는 책

11월 그리고 15일 할머니 잘가요

by 와이낫어스 2022.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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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보내드릴 수 있을까요?




몇 주 동안은 아무리 생각해도 진전이 없었다.
작품 전체가 너무 벅차고 복잡하게만 느껴질 뿐
이었다. 플롯 라인을 너무 많이 집어넣어 자칫
하면 뒤엉킬 지경이었다. 나는 이 문제를 이리저리
궁리하면서 주먹질도 해보고 박치기도 해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을 때
느닷없이 해답이 떠올랐다. 그 해답은 한순간
눈부신 섬광과 함께 완전한 형태로 선물 포장까지
되어 있었다고나 할까 - 나타났다. 당장 집으로
달려가 그 내용을 종이에 받아 적었다. 그런 일은
처음이었는데, 잊어버릴까 봐 그만큼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
p250 중 내용을 발췌하였습니다.



 

이제 와서 전화 한 통 못 해 드려 죄송합니다




나에게 시골에 사시던 할머니가 계셨다.
난 어릴 적부터 친가, 외가에 할아버지가 없었다.
양쪽 두 분 모두 일찍 돌아가셨다고 한다. 부모님
모두 어릴 적에 말이다. 외할아버지는 어머니가
9살 되던 해에 이유도 모르고 주무시다가 돌아
가셨다고 했다. 친할아버지는 아버지가
태어나시고 2살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단다.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 부모님은 불쌍한 거 같다.
두 분 다 아버지의 사랑을 느껴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아무리 그 당시에는 아버지들이
무뚝뚝하다고 하지만 그때는 아버지가 안 계시고
여자가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어릴 적부터 할머니 집에 놀러 가면
할머니는 집에 혼자 계셨다. 모두 출가를 하고
시골의 허름한 집에서 혼자 농사를 지으며 살아
가고 계셨다. 어릴 적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 집은
정말 허름했다. 사실 어릴 때는 할머니 댁에
놀러 가는 건 좋았지만 잠자고 씻는 게 불편했다.
화장실도 밖에 따로 있던 푸세식 나무로
되어있는 곳이었다. 큰 볼일을 볼 때면 냄새가
너무 심해 머리가 띵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집 앞에 냇가가 있었다. 냇가에 물이 많아
물고기 잡고 수영하는 재미가 있었다.
할머니가 사시던 곳은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이다. 지리산을 끼고 있는 역사가 깊은
마을이라고 하였다. 어릴 적 방학이 되면 항상
갔었다. 근처에 용추계곡이라는 곳이 있다.
이 계곡은 정말 물이 맑고 폭포 소리가 일품이다.
할머니를 추억하자면 일주일을 밤을 새워도
끝없이 추억을 회상할 것 같다.

지난주 아버지의 생신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시골 할머니 댁에 내려가 계신 걸 알고
있어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 어디세요? 오늘 생신인데 안 올라
오시나요?"
"응, 그래 고맙다. 할머니께서 고관절 골절이
있어서 여기 병원에서 수술을 하셨는데 아직
의식이 안 돌아오시네... "

짧은 대화 속에서 아버지의 큰 걱정이 느껴졌다.
할머니께서 올해 연세가 91세인데 수술이라니.
나도 걱정이 되었다. 아버지도 수술하는 걸 고민
을 많이 하셨다고 했다. 워낙 연세가 많으시니
말이다. 그래도 자식 된 도리에서 할머니가
일어나지도 못하고 매일 기어 다니다시피
하셨다. 그 모습을 보고 병원에서는 수술하시면
휠체어는 타고 다니 실수 있다는 말에 결정을
내리셨다고 하셨다. 사실 그 병원 의사 말도 난
이해가 가질 않는다. 나이도 그렇게 많으신
분한테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수술을 어떻게
버틸 수 있냐는 말이다. 이 생각을 하면 병원에
당장 쫓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수술하시고
첫날 의식을 바로 차리셨다고 하였다. 그래서
집으로 퇴원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두 번째
날이 되자 할머니의 의식이 흐려졌다. 아버지
께서는 할머니가 위독하다고 연락이 오셨다.
아버지의 말끝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난 애써
아버지한테 힘내라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날 아버지는 통화가 되질 않았다.
밤새 걱정이 되었다. 하루가 지났다. 이틀이
지났다. 오후에 전화가 오셨다.

"아버지, 왜 통화가 안돼요?"
"응, 휴대폰이 꺼져있었나 봐. 미안하다.
아들아, 할머니가 많이 안 좋으시네..
혹시나 아버지가 전화하면 어머니 모시고
내려와야 될 것 같아.. "

아버지 목소리가 힘이 없고 무척 떨렸다.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졌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어머니께서는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네 어머니."
"응, 아들 할머니 돌아가셨데."
" 아... 그렇군요."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너무 늦었지만 할머니에게 가야 했다.
일이 끝나지 않아 마음이 초조했다.
얼른 마치고 가야 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미친 듯이 머리가 복잡해졌다. 뭐부터 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사실 처음은 아니다. 가까운
친척 중에서 내가 어릴 적부터 봐왔던 나의 가족
이라면 할머니가 돌아가신 건 두 번째이다.
할머니의 딸인 고모가 몇 해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많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지병으로
결국 투병하시다 돌아가셨다. 그 당시에도
마음이 뭉클했었다. 워낙 어릴 적 할머니 댁만큼
자주 찾아갔던 고모댁이었기 때문이다. 항상
명절이나 휴가철이 되면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할머니 댁 가서 놀고 그리고 고모집에 들러 놀고
집에 오는 코스를 즐기셨다. 그만큼 자주
찾아뵈었던 고모라서 그때도 마음이 아팠다.
그런 나에게 할머니는 그만큼 어른이 되고
얼굴 한번 보여드리기 어렵고 목소리 한번
자주 하지 못한 못난 손주가 되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화 한 통이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할머니께서 나한테 늘 그런 얘기를
하셨다. 전화라도 자주 해달라고. 목소리도
까먹겠다고. 너무 가슴이 아프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나밖에 모르고 살아온 지난 시간이
할머니한테 죄송할 뿐이다.
가슴이 미어 온다. 미칠 듯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울음을 참았다. 가시는 할머니에게
우는 모습 보여드리기 싫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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