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에 할머니 댁에 갔었다. 나의 두 딸을
데리고 할머니에게 3년 만에 찾아갔다. 할머니의
너무 야윈 모습이 낯설었다. 몸에 살이 없고 뼈만
있는 듯했다. 할머니는 그래도 정신을
멀쩡하셨다. 나와 나의 두 딸을 생생하게 기억
하고 계셨다. 오히려 할머니는 나의 자식들 걱정
을 해주셨다. 많이 컸다며 너무 이쁘다며 얘기
하셨다. 오히려 아직은 어린 나의 딸들이 너무
철이 없어 보여서 죄송한 마음만 들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서 장을 보러 갔다. 나는 아이들
주려고 소시지를 샀다. 냉장고에 있는 나물과
야채를 꺼내고 소시지를 구웠다. 당연히
아이들 먹으라고 했는데 아이들은 김에 밥을
싸서 대충 먹고 나가서 놀았다. 남은 소시지를
반으로 잘랐다. 할머니에게 드렸다. 밥맛이 없어
식사도 거의 안 하셨다. 할머니가 소시지를 한 입
물었다. 맛있다고 하셨다. 세상에 밥 한 그릇을
모두 드셨다. 내가 있던 3일 동안 처음 보았다.
맛있다고 하셨다. 소시지에 케첩을 발라 드렸다.
이런 거 드시는 걸 본 적이 없었는데
어린아이처럼 너무 맛있게 드셨다. 이 모습을
보니 괜히 내 기분이 좋아졌다. 설거지를 하고
티브이 앞에 할머니랑 같이 앉았다. 티브이를 보고
계시는 할머니를 나는 쳐다보고 있었다.
할머니의 손과 발이 눈에 들어왔다. 길 게자란
손톱과 발톱이 눈에 거슬렸다.
"할머니 내가 손톱 발톱 잘라줄까요?"
"응 그러면 고맙지 내가 자르고 싶은데
눈이 잘 안 보여서 못 자르겠어"
손톱깎이를 찾았다. 처음이다. 할머니의 손톱과
발톱을 잘라본 게 말이다. 무척 길었다. 한참을
못 자른 거 같았다. 너무 짧으면 아프실까 봐
적당하게 손톱을 잘랐다. 발톱도 깨끗이 자르고
다듬었다. 내가 봐도 만족스러웠다. 깨끗해진
손톱과 발톱을 만지면서 할머니는 너무
고맙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는 다음날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게 나에게 살아생전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 이후 통화를 한 번
했다. 약속했었다. 할머니에게 꼭 내년에 또
놀러 가겠다고 말이다. 내년이 할머니에게는
너무 길었던 거 같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퇴근하고 밤늦게 출발했다.
막상 출발하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마음이 무거
워졌다. 새벽이 되어서야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큰아버지, 큰어머니, 고모와 고모부, 그리고
아버지가 할머니의 사진 앞에 앉아계셨다.
다들 너무 오랜만에 만났다. 나에게 잘 지냈냐고
물으셨다.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나이를
먹고 나니 좋은 일이 아닌 안 좋은 일에 몇 년 만에
만나는 것이다. 할머니에 절을 하고 향초를
피워드리며 앞에 앉았다. 고모에게 올여름에
와서 할머니의 손톱과 발톱을 정리해드렸다고
했다.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손주의 마지막 효도
인 거 같다고 말이다. 고모가 할머니의 임종을
지켜보며 어쩐지 할머니 손톱과 발톱이 너무
깔끔해서 누가 잘라줬는지 궁금했다고 했다.
큰아버지와, 아버지는 절대 그런 거 해줄 아들이
아니라고 하면서 손주가 해줬다니 너무
잘했다며 나에게 울음을 보이셨다.
막상 할머니 사진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할머니의 입관을 보기 위해 찾아갔다.
살아생전 할머니 얼굴을 뵙지 못하고 돌아가신
후 할머니 얼굴을 보니 울음이 울컥 쏟아졌다.
정말 참고 싶었다. 미친 듯이 눈물을 속으로
삼켰다. 할머니 손을 잡았다. 그리고 할머니
귀에 대고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 부디 좋은 곳으로 가세요. 그리고
남은 자식들 잘 보살펴 주세요."
입관을 끝내고 나왔다. 장례식장 앞에 나와
먼 산을 바라보았다. 다시 올라와 향에 불을
피었다. 할머니 영혼이 떠나지 못하게 잡아두고
싶었다. 장례가 끝날 때까지 향초의 불이 꺼지지
않게 밤을 새웠다. 끝까지 내가 지켜드리고
싶었다.
마지막 날 화장터를 향했다. 할머니의 유골함을
나의 손에 받았다. 너무 따뜻했다. 할머니가
마치 나의 무릎 위에 앉아계신 거 같았다.
따뜻한 유골함을 가슴에 안고 있었다.
할머니를 묘지에 묻어드렸다.
그 장소를 기억하려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잊지 않으려고 억지로 기억했다.
가슴에 안고 또 가슴에 안았다.
오늘까지만 생각하고 내일부터는 가슴속에
묻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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