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책상이 있는가?
이 장에서 마지막으로 말해두고 싶은 것은 내
책상에 대해서다. 나는 예전부터 방 전체를
압도하는 거대한 떡갈나무 책상을 갖고 싶었다.
트레일러 세탁실의 아동용 책상도 싫었고
셋집에서 쓰던 평범한 책상도 싫었다. 1981년에
나는 드디어 마음에 드는 책상을 구하여
채광창이 있는 널찍한 서재 한복판에 갖다
놓았다.(집 뒤쪽의 건초 다락을 개조한 방이었다)
그때부터 6년 동안 이 책상을 썼는데, 당시 나는
술이나 마약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마치 정처 없이 바다 위를 떠도는 배의 선장과도
같았다.
술을 끊고 한두 해가 지났을 때 나는 이 흉물을
치워버리고 그 자리에 거실용 가구들을
들여놓았다. 아내의 도움을 받으며 책상을
조각조각 끄집어내고 근사한 터키산 양탄자를
깔았다. 우리 아이들이 집을 떠나기 전이었던
1990년대 초에는 저녁마다 아이들이 이 방에
들어와 농구 경기나 영화를 보면서 피자를 먹곤
했다. 아이들은 대개 피자 껍데기가 가득한
상자를 치우지도 않고 나갔지만 나는 그것조차
싫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 방에 들어와서 나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는 듯했고, 나도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책상을 마련했다. 수제품이고 아름다우며 크기는
공룡 책상의 절반쯤 되는 것으로 나는 그것을
집필실 서쪽에 있는 처마 밑의 한 구석에
붙여놓았다. 이 처마는 더럼에서 살 때 내가 그
밑에서 잠을 잤던 그 처마와 아주 비슷하다.
그러나 벽 속에서 소란을 피우는 쥐떼도 없고,
아래층에서 누가 빨리 딕에게 꼴을 먹이라고
소리치는 노망난 외할머니도 없다.
나는 지금도 바로 그 처마 밑에 앉아 있다.
내 나이 쉰세 살, 시력도 안 좋고 한쪽 다리를
절긴 하지만 숙취 따위는 없다. 나는 내가 할 줄
아는 일을 하고 있으며 능력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이야기한
그 모든 일들을 겪었고(물론 말하지 않은 일도
많지만), 이제부터는 글쓰기에 대하여 말하려고
한다.
미리 약속했듯이, 너무 긴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우선 이것부터 해결하자. 지금 여러분의 책상을
한구석에 붙여 놓고, 글을 쓰려고 그 자리에 앉을
때마다 책상을 방 한복판에 놓지 않은 이유를
상기하도록 하자.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 지음
p123 ~ 124 까지의 내용을 발췌하였습니다.
나의 퇴사 그리고 새로운 시작
나는 어제 회사에 퇴사의사를 밝혔다.
나는 같은 회사를 1년 이상 다녀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다니는 곳은 3년 근무를 했다.
그렇다고 이 회사가 처우가 좋거나 일이 편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일도 힘들고 막일도 많고
처우도 좋은 편도 아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이런
긴 시간을 이 회사에서 보냈는지 아직은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이곳을 다니면서 나를
스쳐 지나갔던 사람은 30~40명쯤은 되는 것 같다.
10명 남짓 되는 회사 인원에서 이 정도 인원이
지나갔다는 것은 많은 인원수라고 생각한다.
어제부터 나의 기억들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좋았던 나빴던 그래도 시간을 이 회사와 계약을
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았으니 말이다.
2020년 4월이었다. 처음 이 회사를 입사했던
시기이다.
나는 뭐했었지
나는 장사를 했었고 2020년 1월을 끝으로
폐업을 했다. 어떤 장사를 하였고
왜 폐업했는지는 다음 기회에 글로 써볼 계획이다.
폐업을 하고 그때 배달대행을 하고 있었다.
아침 10시부터 밤 12시에서 새벽 1시 정도까지
매일 빠짐없이 배달일을 했다. 시기가 1월이었고
겨울이었다. 한 겨울 이라서 너무 추웠다.
겨울은 원래 춥다. 하지만 겨울바람은 더 춥다.
어떤 사람들은 두꺼운 점퍼 입고하면 안 춥지
않나라고 생각하지만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가면서
일하는 건 뼈가 시릴 정도였다.
여담이지만 나는 군대 있을 때 한강 하류와
바다가 연결되는 곳에서 근무했었다.
그곳도 겨울에 보초근무를 서고 있을 때를
생각하면 정말 죽을 듯이 추웠었다.
차라리 얼어버렸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도계는 영하 26~28까지 내려갔으니 말이다.
아무튼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발가락에
동상이 걸려 한동안 고생했었다.
심지어 양말에 수면양말에 방한부츠를 신었었다.
그래도 추우면 핫팩까지 발안에 넣어야 그나마
괜찮았다. 그렇게 겨울을 보냈는데 그 해 겨울
같은 배달 대행사에 일하던 분들이 여러 명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내가 일 하던 배달 대행사는
거래처를 늘리려고 영업을 많이 하였고 그만큼
무리한 운행도 했다. 눈이 꽤 많이 와도 운행을
강행했다. 배달기사들이 도로에 미끄러지고 차와
부딪혀 사고를 겪는 과정에서도 다른 배달
대행사들이 모두 문을 닫을 때까지 운행을
멈추지 않았다. 나도 배달 대행사의 관리자로
일을 하였기 때문에 끝까지 운행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무모한 짓이었다.
힘든 겨울을 나고 3월이 되었을 때 같은
배달 대행사의 관리자들 중에서 사고를 안 당한
사람은 나밖에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봄이 다가올 때쯤 고민을 했다. 배달대행일을
계속하기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같이
운영을 했던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빠지기로 하였다. 그 당시 코로나가 발생하였다는
기사가 뉴스에 조금씩 나올 시기였다.
물론 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배달 관련 일들이
굉장히 많아졌고 관련 종사자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내가 거주하던 곳은 신도시였던 곳이라
코로나 이전에도 배달 수요가 많은 곳이었다.
배달대행을 했을 때 수입도 꽤 좋았다. 일반
직장인에 비하면 두배 가까운 소득이었으니
말이다. 몸뚱이 하나로 일하는 거라 투자하는
것도 없이 오토바이만 있으면 일할 수 있는
거라 꽤 좋은 사업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당시에만. 지금 생각해보면 배달대행 일도
자신과의 싸움이다.
누군가 강요를 하거나 회사처럼 상하관계가
없기 때문에 일을 나가는 것도 의지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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